안녕하세요~ 나그네입니다. 성경 이야기로 오랜만에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예수님의 비유중의 하나인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짧은 말씀이지만 가볍지 않은 매우 인상에 남는 말씀입니다.
착한 사마리안의 비유라도고 합니다.
유대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영생에 대한 질문을 함에 예수님께서 질문자에게 율법을 확인시키고 이 비유로 답을 해주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미움받던 사마리아인이였지만 그 한 사람만이 강도에게 습격당해 죽어가는 유대인을 구해주는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과 영원한 생명이 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짧은 이야기이지만 등장인물들을 알아봐야겠지요?
여리고로 여행을 가던 유대인. 도중에 강도에게 습격당하여 죽기 직전의 위험에 처하고 맙니다.
지나가는 행인①
응? 유대인 나그네와는 같은 민족이잖아...게다가 제사장
지나가는 행인②
헉! 또 동족인 유대인
지나가는 행인③
이사람은 원수 사이인데 당연히 지나칠 거야
누가복음 10장 25-37절
그럼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한 유대인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유대인은 강도에게 습격을 당해 몸에 지닌 것을 모두 빼앗기고 두들겨 맞아 쓰러져 죽을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에구 이를 어쩌나!!"
잠시 후, 한 유대 제사장이 그 길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얼핏 보니 그곳에 나그네가 쓰러져 있습니다. 그런데 귀찮은 일에 말려들지 않으려고 그랬는지 그곳을 피해서 지나가버렸습니다.
또 잠시 후, 이번에는 ※레위인이 지나갑니다. 그 또한 나그네가 위급한 상황인걸 눈치채지만 그를 못본 척 지나가 버렸습니다.
시간이 좀 더 흐르자 이번에는 당시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사마리아인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도 나그네를 못 본척 지나갈 것 같은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너덜너덜해져 쓰러져있는 유대인을 불쌍히 여기어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닦아주고 붕대를 감아 응급처치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나귀에 그 유대인을 태워서 숙소까지 운반해주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정말 좋은 사람이잖아!!"
다음날 사마리아인은 숙소 주인에게 은화 두 닢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데려온 이 사람을 잘 부탁합니다. 혹시나 치료 중에 돈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들러서 갚겠습니다."
※레위인 : 12지파 중 하나. 하나님께 제사를 담당하는 레위지파 사람.
이 비유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은 앗수르에게 멸망한 북이스라엘 사람들로 사실 유대인과 같은 민족이며 신앙의 뿌리도 같습니다. 그러나 남 유다 출신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이 혈통의 순수성을 잃었다고 생각하여 같은 유대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사마리아인들은 사마리아 5경이라는 독자적인 경전을 삼고 있었고 ,그래서 신앙마저도 변질되었다고 생각하였기에 유대인들은 더욱 그들을 싫어하고 적대적인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시에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들과 말하는 것조차 그들에게는 불경한 일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이 비유 이외에도 사마리아인들이 차별을 받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런 배경을 알면 예수님의 비유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요.
예수님을 곤란하게 하려 영생에 대한 질문을 한 유대교 율법학자. 영생에 관해 자신은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 질문한것 처럼 외우고 있는 율법대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한다면 구원을 받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율법을 전부 다 지키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되겠죠.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잘알고 있는 율법학자에게 왜 사마라아인의 교훈을 주셨을까요? 그것은 인간은 결코 스스로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려고 이 원수가 유대인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해주신겁니다.
결국 오만한 인간은 대부분 율법을 지키어 영생을 얻으려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도 두가지 견해로 나뉘어져 이 비유를 바라봅니다.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누구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사랑을 가지고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즉, 조건 없는 아가페 사랑으로 원수도 사랑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지나가던 두 유대인은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쓰러져있는 나그네를 돕지 않았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눅 10:31)
예수님은 바로 당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율법을 지키려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그들의 모습을 꼬집고 있습니다.
반면에 마지막으로 지나가던 사마리아인은 앙숙인 유대인 나그네를 아낌없이 도와주고 간호해 준다는 내용으로 비유합니다.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눅 10:33-34)
예수님은 너 스스로 구원을 받으려면 사마리아인처럼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원수를 조건없이 사랑해요? 이건 불가능합니다!!"
한편 이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예수님이 하실 일을 비유하고 있다고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당시 예수님도 질문하고 있는 유대인처럼 일부 유대인들로부터 사마리아인들처럼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또 강도(사탄)에게 당해 엉망이 되어버린 유대인 여행자는 우리 인간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원수 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생명을 다해 아가페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믿음으로서 구원을 얻거나 아니면 모든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면 예수님이 오셨을 이유가 없었겠지요.
이처럼 인간을 사랑하신 예수님이 죄를 대속하신 일을 알고 믿어 영생을 얻는 것과 나의 의로움으로 모든 율법을 지켜 영생을 얻는 것. 즉 믿음과 행위의 싸움이 여기에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100%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1번의 관점으로 아니면 1,2번을 혼합해서 예수님과 교회를 바라봅니다.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겸손해진다면 예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을겁니다.
여러분은 착한 사마리안인 법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이 법은 자신에게 특별한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지 않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입니다. 이 법에 의하면 강도당한 유대인을 보고 그냥 지나친 제사장과 레위인은 유죄가 되어버립니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을 구조할 수 있음에도 고의로 구조하지 않으면 5년 이하의 구금 및 50만 프랑의 벌금에 처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이 법이 굉장히 소극적으로 밖에 적용되어 있지 않습니다.
관련된 법률로 노인이나 영아, 직계존속, 질병 등으로 도움이 필요한자를 보호할 법률상 의무가 있는 자의 유기죄만 법에 의해 처벌됩니다.
반대 의미의 착한 사마리아 법인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도 의료종사자 등만이 업무수행 중 응급처치는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즉, 일반인이 위험에 처한자를 도와주다가 피해를 발생시켰을 때에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선뜻 남을 돕기도 어려운 환경입니다. (살면 미담 죽으면 처벌, 도와줬는데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등)
"와! 예수님의 비유가 의외의 곳에도 영향을 주고 있군요!!"
예수님의 비유는 어떤 것들은 이해하기 어렵고 해석도 여러 가지로 나뉘기도 합니다. 그 비유들에 담긴 메시지가 심오하기 때문에 더욱 깊게 생각하게 하는 것이겠지요.
만약 저에게 사마리아인과 같은 일이 닥쳐온다면 법을 생각하기보다는 사람을 먼저 구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 같은데요. 일단 바로 구급차부터 부르겠습니다!!
그럼 또 봐요~ 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