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학에 의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나치 독일 히틀러의 인종청소(제노사이드)가 유명하다. 최근에는 유전자 만능주의로 게놈 산업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이것은 21세기인 지금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우생 사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우생학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우생학은 기본적으로 우월한 유전자를 지키고 열등한 유전자를 제거함으로서 질 좋은 유전자만을 후세에 전한다는 생각이다. 나치 학살, 인종 차별, 장애인 차별, 강제 단종 수술, 낙태 등을 정당화하는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뒤에 소개하는 프랜시스 골턴이 우생 사상에 정의를 주어 우생학(eugenics)이란 말을 만들어 냈다.
우생학은 앞서 언급했듯이 진화론적인 우승열패(優勝劣敗)의 시각에서 다음의 두 가지로 분류된다.
- 우량한 유전자의 보호가 목적. 나치의 *레벤스보른(Lebensborn)의 설립과 현대의 유전자 개량 마이크로 칩을 내장하는 **트랜스 휴머니즘의 근거가 되는 사상이다.
*트랜스 휴머니즘 - 인간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사이보그 화 기술
**레벤스보른 - 나치 독일이 설치한 기관으로 순수한 아리아인을 생산하기 위한 시설. 많은 사생아가 생겼다.
- 열등 유전자의 폐기를 목표로 한다. 강제 단종, 인구감소, 인종 차별의 근거. ex)나치 학살
이러한 감정적인 우생 사상에 일련의 학문으로서 시작을 준 것이 1798년 「인구론」을 쓴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이다. 맬서스의 덫으로도 유명한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인구는 기하급수적(곱하기)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더하기)으로만 증가한다. 그 결과로 발생하는 인구 문제는 사회 제도의 개선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맬서스는 "전쟁 빈곤 기근은 인구 억제를 위해 좋은 것이다. 빈민을 구제하는 법을 폐지하여 돕지 말아야 그들이 사라지고 영세민을 살게 한다"라고 주장했다.
맬서스의 덫은 금새 논리적 모순이 발생했다. 다음의 이유로 식량 공급의 발전이 늦어진다는 전제조건이 무너진 것이다.
이렇게 무너진 멜서스의 논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은 이어졌다. 특히 진화론의 찰스 다윈은 그의 사상을 옹호하였는데 1859년 출간한 「종의 기원」에는 적자생존이라는 형태로 맬서스의 사상이 잘 반영되어있다.
다윈의 사촌이기도 한 프랜시스 골턴이 바로 우생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영국 우생학 협회의 회장이며, 현대 통계학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다.
*인위적 도태 - 자연선택의 반대어인 품종개량. 의도적으로 부모를 선별해 더 우수한 유전자를 진 인간을 선택한다. 골턴은 우량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끼리 결혼을 몇 세대간 해나감으로 우수한 인간만이 남아있게 될 것을 예상했다.
골턴은 또한 우수한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의 우월성을 존중하는 한편, 자신이 간주한 열등한 유전자의 소유자들에게는 엄격했다.
골턴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구제는 자연선택을 방해한다며 반대하며, 열등한 사람은 도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후 1911년 외삼촌인 골턴에게서 영국 우생학 협회의 회장직을 물려받은 것은 찰스 다윈의 아들 레오나르도 다윈이다. 이처럼 우생학의 역사에는 다윈 가문의 영향이 적지 않다.
이윽고 19세기에 이르러 영국 철학자 하버트 스펜서로부터 사회진화론이 퍼져 나갔다. 사회 진화론은 생존 경쟁, 적자생존, 우승열패라는 개념을 인간 사회에 적용해 나가기 시작한다. 사회 진화론은 당시 제국 주의와 식민주의를 정당화하는 밑받침이 되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칼 마르크스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진화론의 자연선택은 계급투쟁 사관에 영감을 주게 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자본론」을 다윈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공산주의에 항상 대량 학살이 뒤따르는 건 인간을 한낱 물건으로 취급하는 유물론과 진화론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글에서는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위에 열거한 문제들이 우연히 발생한 것들이 아니다. 우생 사상을 통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 문화 마르크스주의 세력들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소중한 존재이다.